집 한구석에 '조선일보'가 찍힌 명함이 보였다. 그릇을 씻는 아내에게 내밀었다. "요즘 이사가 많아서 그런지 한참 돌리더라고. 8개월 무료에 현금 3만 원, 아이들 보는 학습지, 1년 되면 무조건 끊게 해준다던데…." 없는 살림에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은 아내는 학습지에 끌리는 듯했다. 명함에는 '맛있는 논술', '맛있는 한자', '소년조선' 따위가 적혀 있다. "받기로 했어?" 아내는 씨익 웃었다.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존심 하나 어디에도 꿀리지 않으려는 지역 일간지에 다닌다. 게다가 그 자존심이 제 것인 양 여기려 한다. 하지만, 그런 호기 정도는 아내에게 무겁지 않다. 아내는 20대부터 30대 초반을 언론개혁운동으로 보냈다.
"신고하지. 포상금이 쏠쏠할 텐데…." 덜거덕거리던 그릇이 잠시 조용해졌다. 곧 거품을 벗겨 내는 시원한 물소리가 이어졌다. "얼마 전에 회사 선배가 불법경품 신고해서 포상금을 받았는데 지국 사람이 낮에 집으로 찾아와서 따졌데, 애와 엄마밖에 없었는데…." 확 달아오르는 뜨거움을 어디에 쏟아야 할지 망설였다. 신문 파는 사람은 또 다른 약자일 뿐이고 그를 휘두르는 신문사는 너무 멀었다. 분노는 그 사이에서 초라하게 맴돌았다. 게다가 '가정평화'가 지닌 기회비용이 '사회정의'에 못 미친다는 근거도 내세울 게 없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팔면 자기 신문은 어떻게 팔아?" 그냥 씨익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